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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해발 1000m에서 토하고 버텼다 | 스물여덟 살의 첫 현장

by 나무러버 2026. 6. 2.
조경 현장 이야기 · 지리산 · 2002년
2002년 여름. 나는 입사한 지 두 달도 채 안 된 28살 청년이었다. 사장님이 불쑥 던진 한마디. "이 공사 한번 해봐." 그렇게 내 첫 현장이 시작됐다. 장소는 지리산 피아골에서 임걸령으로 올라가는 해발 1000m. 거기서 나는 토하고, 버티고, 그리고 울었다.

입사 두 달, 첫 현장이 해발 1000m였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남부관리사무소에서 발주한 등산로 개설 공사였다. 피아골에서 임걸령으로 오르는 길. 데크계단과 야면석 포장이 주요 공사였다. 베테랑도 쉽지 않을 현장이었는데, 그 일이 입사한 지 두 달도 안 된 내 손에 떨어진 것이다.

그때 그 기억
설계도면을 펼쳐놓고 내역서를 들여다보며 자재 하나하나를 따졌다. 인력 계획을 세우고, 숙소를 알아보고, 헬기 업체를 찾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모든 걸 혼자 해야 했다. 얼마나 부담이 컸으면, 열흘 동안 아침밥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토했다. 그래도 출근했다.

헬기가 뜨기 전, 나는 떨었다

해발 1000m 현장까지 자재를 올리는 방법은 헬기뿐이었다. 당시 국내 민간 항공사는 네 곳. 그중 충청도에 있던 헬리코리아를 선택했다. 서울에 있는 업체들은 이동비만 1시간에 400만 원이 넘었고, 헬리코리아는 상대적으로 가까워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그런데 헬기가 뜨질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이 지나도록 헬기는 땅에 묶여 있었다. 기상 악화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한 날씨처럼 보여도 지리산 특유의 골바람이 불면 기장이 "안 된다" 한마디로 끝이었다. 헬기는 뜰 수 없었다. 자재는 쌓여있고, 공사는 멈춰있고, 시간은 흘렀다.

일주일의 대기
기상 악화와 골바람으로 헬기가 일주일째 뜨지 못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날도 기장이 안 된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속이 탔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늘의 결정이었다.

드디어 헬기가 뜨는 날이 왔다. 그날 나에게 무서움은 사치였다. 머릿속에는 딱 하나였다. '빨리 끝내야 한다.' 평소 고소공포증이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그것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사명감 하나로 올라탔다.

아찔했던 순간
헬기를 타고 현장에 도착해 자재를 내리는 과정에서 사고가 날 뻔했다. 로프에 몸이 걸려 그대로 끌려 올라갈 뻔했다. 자재를 내리다가 지리산 고사목을 건드려 다칠 뻔한 순간도 있었다. 그 순간에는 무서운 줄도 몰랐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와서야 소름이 끼쳤다. 그제서야 무서웠다.

피아골 대피소에서 임걸령까지, 두 시간의 출근길

숙소는 피아골 대피소로 정했다. 해발 1000m 현장을 매일 오르내릴 수 없었고, 더 가까운 곳은 먹고 자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대피소에서 현장까지도 두 시간을 더 올라야 했다.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새벽 5시, 순번을 정해 밥을 했다. 6시에 밥을 먹고, 6시 30분에 현장으로 출발. 8시 30분에 도착해서 30분 쉬고 9시에 일을 시작했다. 점심은 준비해간 밥과 반찬, 라면으로 때우고, 일을 마치고 내려오면 저녁 6시였다.

지리산의 여름
한여름이었지만 지리산 계곡물은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땀에 젖은 몸을 씻기엔 충분했다. 저녁 7시쯤 밥을 먹고 나면 그대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그만큼 매일이 고됐다.

2주치 식량이 1주일 만에 바닥났다

헬기로 2주치 식량을 올렸는데 1주일 만에 떨어졌다. 지리산의 맑은 공기가 밥맛을 살렸던 것 같다. 그리고 일이 힘드니 먹는 양도 달랐다. 식량 추가 조달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후배들 없었으면 못 했다

아무리 돈을 준다 해도 그 험한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할 사람이 없었다. 용접공 한 명, 기술자 한 명을 겨우 구하고, 나머지는 학교 후배들을 수소문했다. 나 자신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아직 학교와 가까웠고, 후배들과 연락이 닿기 쉬웠다. 마침 여름방학 기간이라 시간이 되는 후배들 몇이 기꺼이 따라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타이밍이 기적 같았다.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지금 다시 만나면 그날 이야기로 밤을 새울 수 있을 것 같다. 그 친구들이 없었다면 그 현장은 없었다.

여관방에서 안정환의 골을 봤다

2002년 월드컵. 공사가 한창이던 그 여름, 한국은 16강전에서 이탈리아와 맞붙었다. 일이 끝나고 후배들과 마을로 내려와 여관방 하나를 빌렸다. 설기현의 동점골, 그리고 연장전 안정환의 결승골. 좁은 여관방 안에서 모두가 서로 부둥켜 안고 소리를 질렀다.

그날의 감정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낮에는 해발 1000m에서 땀을 흘리고, 밤에는 대한민국을 응원하며 울었다. 스물여덟 살의 여름이었다.

그 여름이 나를 만들었다

공사가 끝나고 내려오는 길, 완성된 데크계단을 뒤돌아봤다. 아무것도 몰랐던 스물여덟 살이 해냈다. 헬기 이동비를 따지고, 골바람과 싸우고, 로프에 끌려갈 뻔하면서도 끝냈다.

그 고통을 겪고 나서 달라진 게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게 아니라 두려움을 넘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어떤 현장 앞에서도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여름이 남긴 것
우리는 지리산 해발 1000m에서 이런 것도 해냈는데, 뭘 못 할까. 그 자신감이 이후 30년을 버티게 해준 힘이었다.

지금도 피아골 등산로를 오르는 사람들이 그 데크계단을 밟고 지나간다. 그 계단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그 여름, 토하고 떨고 울었던 스물여덟 살 청년이 만든 계단이라는 것을.

현장 정보
위치: 전라남도 구례군 피아골 ~ 임걸령 (해발 약 1000m)
발주: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남부관리사무소
공사 내용: 등산로 개설 (데크계단, 야면석 포장)
시공 시기: 2002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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