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두 달, 첫 현장이 해발 1000m였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남부관리사무소에서 발주한 등산로 개설 공사였다. 피아골에서 임걸령으로 오르는 길. 데크계단과 야면석 포장이 주요 공사였다. 베테랑도 쉽지 않을 현장이었는데, 그 일이 입사한 지 두 달도 안 된 내 손에 떨어진 것이다.
헬기가 뜨기 전, 나는 떨었다
해발 1000m 현장까지 자재를 올리는 방법은 헬기뿐이었다. 당시 국내 민간 항공사는 네 곳. 그중 충청도에 있던 헬리코리아를 선택했다. 서울에 있는 업체들은 이동비만 1시간에 400만 원이 넘었고, 헬리코리아는 상대적으로 가까워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그런데 헬기가 뜨질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이 지나도록 헬기는 땅에 묶여 있었다. 기상 악화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한 날씨처럼 보여도 지리산 특유의 골바람이 불면 기장이 "안 된다" 한마디로 끝이었다. 헬기는 뜰 수 없었다. 자재는 쌓여있고, 공사는 멈춰있고, 시간은 흘렀다.
드디어 헬기가 뜨는 날이 왔다. 그날 나에게 무서움은 사치였다. 머릿속에는 딱 하나였다. '빨리 끝내야 한다.' 평소 고소공포증이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그것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사명감 하나로 올라탔다.
피아골 대피소에서 임걸령까지, 두 시간의 출근길
숙소는 피아골 대피소로 정했다. 해발 1000m 현장을 매일 오르내릴 수 없었고, 더 가까운 곳은 먹고 자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대피소에서 현장까지도 두 시간을 더 올라야 했다.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새벽 5시, 순번을 정해 밥을 했다. 6시에 밥을 먹고, 6시 30분에 현장으로 출발. 8시 30분에 도착해서 30분 쉬고 9시에 일을 시작했다. 점심은 준비해간 밥과 반찬, 라면으로 때우고, 일을 마치고 내려오면 저녁 6시였다.
2주치 식량이 1주일 만에 바닥났다
헬기로 2주치 식량을 올렸는데 1주일 만에 떨어졌다. 지리산의 맑은 공기가 밥맛을 살렸던 것 같다. 그리고 일이 힘드니 먹는 양도 달랐다. 식량 추가 조달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후배들 없었으면 못 했다
아무리 돈을 준다 해도 그 험한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할 사람이 없었다. 용접공 한 명, 기술자 한 명을 겨우 구하고, 나머지는 학교 후배들을 수소문했다. 나 자신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아직 학교와 가까웠고, 후배들과 연락이 닿기 쉬웠다. 마침 여름방학 기간이라 시간이 되는 후배들 몇이 기꺼이 따라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타이밍이 기적 같았다.
여관방에서 안정환의 골을 봤다
2002년 월드컵. 공사가 한창이던 그 여름, 한국은 16강전에서 이탈리아와 맞붙었다. 일이 끝나고 후배들과 마을로 내려와 여관방 하나를 빌렸다. 설기현의 동점골, 그리고 연장전 안정환의 결승골. 좁은 여관방 안에서 모두가 서로 부둥켜 안고 소리를 질렀다.
그 여름이 나를 만들었다
공사가 끝나고 내려오는 길, 완성된 데크계단을 뒤돌아봤다. 아무것도 몰랐던 스물여덟 살이 해냈다. 헬기 이동비를 따지고, 골바람과 싸우고, 로프에 끌려갈 뻔하면서도 끝냈다.
그 고통을 겪고 나서 달라진 게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게 아니라 두려움을 넘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어떤 현장 앞에서도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금도 피아골 등산로를 오르는 사람들이 그 데크계단을 밟고 지나간다. 그 계단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그 여름, 토하고 떨고 울었던 스물여덟 살 청년이 만든 계단이라는 것을.
발주: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남부관리사무소
공사 내용: 등산로 개설 (데크계단, 야면석 포장)
시공 시기: 2002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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