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시절, 제가 처음 맡은 현장 프로젝트가 등산로 정비사업이었습니다. 지리산 국립공원 해발 1,000m 지점에 데크계단을 설치하는 작업이었는데, 솔직히 그전까지는 "이런 걸 도대체 누가 와서 만드는 걸까" 하고 그냥 지나쳤던 시설물이었습니다. 막상 제가 직접 그 자리에 서게 되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등산로 계단, 저절로 생긴 게 아닙니다
등산로 계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등산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인공 구조물이 자연경관을 해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 마음도 이해는 됩니다. 처음 보면 딱딱한 데크가 산속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자연 그대로 두고 싶다면, 올라오지 않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사람이 한 번 오르기 시작하면 자연히 길이 생기고, 정비되지 않은 등산로는 빗물에 토사가 흘러내려 더 깊이 침식됩니다. 이를 토사 유출이라고 하는데, 토사 유출이란 강우 시 지표면의 흙과 모래가 물과 함께 쓸려 내려가는 현상으로, 등산로 바닥이 점점 패이고 주변 식생이 뿌리째 노출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거기에 더해 답압 현상도 심각합니다. 답압이란 사람이나 동물이 지속적으로 같은 땅을 밟아 토양이 단단하게 굳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답압이 심해지면 토양 내 공극이 사라져 수목 뿌리가 산소를 흡수하지 못하고 결국 나무가 고사합니다. 등산로 정비, 특히 데크계단과 데크로드 설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용객의 동선을 일정한 구역으로 제한해 주변 자연이 답압에서 벗어나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국립공원 내 등산로 훼손 실태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등산객이 집중되는 구간에서 나지화(裸地化), 즉 식생이 완전히 제거된 맨땅이 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국립공원공단). 결국 데크계단은 자연을 훼손하는 구조물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한 방어선에 가깝습니다.
누가, 어떻게 만드는 걸까
제가 직접 현장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등산로 계단은 민간 시공업체가 지방자치단체나 국립공원공단 같은 정부 기관의 발주를 받아 설치합니다. 쉽게 말해 국민의 안전을 위해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 시설물입니다. 지리산 현장에서 제가 직접 경험한 방식도 그랬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자재 운반입니다. 해발 1,000m 지점에 목재를 어떻게 올리냐고요? 제 경험상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 차량이 접근 가능한 구간까지는 트럭으로 자재를 이송한 뒤, 그 이후 구간은 인력으로 운반합니다.
- 차량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고지대나 경사가 극심한 구간은 헬기를 이용해 자재를 공수합니다.
저는 지리산 현장에서 헬기로 자재를 올리는 장면을 직접 봤습니다. 처음 볼 때는 꽤 인상적이었는데, 생각보다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작업이더군요. 숙식은 산 중턱에 있는 대피소에서 해결했습니다. 며칠씩 산에서 머물며 작업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시공 방식도 현장 여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경사가 급한 구간에는 낙상 방지를 위해 난간을 함께 설치하고, 경사가 완만한 구간은 목재 계단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구간에는 휠체어나 유모차가 이동할 수 있도록 경사로를 함께 설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등산로 정비는 단순히 계단 하나 놓는 작업이 아니라, 지형 분석과 사용자 안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시공 과정입니다.
합성목재 vs 천연목재, 어느 쪽이 나을까
합성목재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천연목재가 낫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합성목재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내구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습니다. 합성목재란 목분(목재 분말)과 합성수지를 혼합해 제조한 재료로, 천연목재에 비해 썩거나 뒤틀리는 문제가 적고 흰개미나 해충에도 강합니다. 비가 와도 미끄럼이 덜하고, 관리 주기가 길어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언급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국립공원 현장에서는 합성목재보다 천연목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연 환경과의 조화입니다. 합성수지 성분이 포함된 합성목재는 장기적으로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산림 생태계라는 환경 특성상 되도록 자연 친화적인 소재를 쓰는 것이 맞다고 보는 것이죠.
저도 합성목재보다는 천연목재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내구성 면에서 합성목재가 유리한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다만 등산로는 오랜 시간 산 생태계와 공존해야 하는 공간인 만큼, 내구성 하나만으로 소재를 결정하기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더 많습니다.
산림청이 발표한 등산로 정비 지침에 따르면, 자연 생태계와의 조화를 우선 기준으로 삼아 시설 소재와 형태를 결정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산림청). 이 기준을 보면 국립공원에서 천연목재를 고집하는 이유가 이해됩니다.
핵심적으로 정리하면, 등산로 계단 소재를 선택할 때 현장에서 고려하는 주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연 생태계와의 조화 (소재의 친환경성)
- 등산객 안전 (미끄럼 방지, 하중 지지력)
- 유지보수 주기와 비용
- 설치 지점의 지형 및 기후 조건
산에서 잘 닦인 계단을 만날 때마다, 이제는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됩니다. 누군가 며칠을 산속에서 지내며 한 칸 한 칸 놓은 결과물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등산로 데크계단을 밟을 기회가 있다면, 그 아래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한 번쯤 떠올려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