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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석축 (가구식 석축, 직선미, 전통조경)

by jiwoofoever 2026. 4. 16.

우리나라 전통 건축이 곡선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저도 한때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조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인식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불국사 가구식 석축을 처음 제대로 들여다봤을 때, 제가 가진 전통 건축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가구식 석축이란 무엇인가, 왜 특별한가

가구식 석축(架構式 石築)이란 수직의 석주(石柱)와 수평의 인방석(引枋石)을 마치 목조 건물의 뼈대처럼 짜 맞추고, 그 사이 공간을 자연석으로 채워 넣는 방식의 석축 구조입니다. 여기서 인방석이란 기둥 사이를 가로로 연결하는 수평 석재를 말하며, 목조 건축의 보나 인방과 같은 역할을 돌로 구현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돌로 격자 틀을 만들고 그 틀 안을 돌로 채운 구조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불국사는 토함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북고남저(北高南低)의 지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경사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 신라의 장인들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가구식 석축이었습니다. 자하문 앞의 하층 석축은 하부에 거대한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가공석재를 가구식으로 정교하게 짜 올렸습니다. 단순히 돌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석주와 주두석(柱頭石), 동자주(童子柱), 갑석(甲石)으로 장방형의 격자 틀을 형성한 것입니다.

대학교 시절 교수님께서 이 석축 구조에 대해 얼마나 열정적으로 설명하셨는지 지금도 생생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오래된 돌담이라고 생각했는데, 구조를 뜯어보고 나서야 이게 얼마나 정밀한 건축적 사고의 결과물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가구식 석축의 구조적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석주(수직 기둥 돌)와 인방석(수평 연결 돌)으로 격자 틀 형성
  • 틀 내부를 자연석으로 밀실하게 채워 구조적 안정성 확보
  • 대웅전 구역은 1단, 극락전 구역은 2단 구성으로 공간 위계 표현
  • 범영루 돌출부 기둥 하부에는 점차형 석재를 쌓아 석주 기능 구현
  • 석교 하부에는 홍예(虹霓) 구조 적용

여기서 홍예란 돌이나 벽돌을 아치형으로 쌓아 하중을 분산시키는 곡선형 구조물을 말합니다. 직선 위주의 가구식 석축 안에서도 필요한 부분에는 곡선 구조를 절묘하게 결합한 것입니다. 불국사 가구식 석축이 2011년 보물 제1745호로 지정된 데는 이런 건축적 완성도가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출처: 문화재청).

직선의 미학, 한국 전통조경을 다시 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한국 전통을 곡선의 미학으로 기억하게 된 걸까요? 저는 이 지점이 조경을 설계하는 사람으로서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질문이었습니다.

흔히 조경 현장에서 많이 쓰이는 자연석 쌓기 방식은 돌을 비스듬하게 맞물려 올리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현장에서 일하면서 확인한 사실은, 이 방식이 실은 일본식 석조 기법에 훨씬 가깝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석축은 돌을 수직으로 세워 쌓는 옹벽식(擁壁式) 구조가 기본입니다. 여기서 옹벽식이란 석재를 수직으로 직각에 가깝게 쌓아 경사면을 지지하는 방식을 말하며, 오늘날 토목 공학에서 사용하는 옹벽의 원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 시대 궁궐 후원의 화계(花階)입니다. 화계란 경사지에 단을 나누어 석축을 쌓고, 각 단 위에 화초나 수목을 심어 꾸민 계단식 정원을 말합니다. 경사를 완만하게 다듬어 잔디를 까는 방식이 아니라, 뚝뚝 끊기는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정원을 올리는 구조입니다. 담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사지에서 담을 비스듬하게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구간 수평을 유지하다가 단을 두어 경사를 극복하는 방식이 우리의 전통이었습니다.

연못 형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전통 정원에서는 방지원도(方池圓島)라는 양식이 자주 등장합니다. 방지원도란 사각형 연못 안에 원형 섬을 배치하는 형태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공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연못 자체는 직선으로 구획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보면, 한국 전통 조경은 곡선을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직선을 기반으로 필요한 곳에 곡선을 가미하는 방식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제가 실제로 조경설계 프로젝트에서 불국사 가구식 석축의 개념을 적용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경사지 정원을 설계할 때 비스듬한 자연석 쌓기 대신 수직 석축으로 단을 명확하게 나누고, 그 위에 식재 공간을 구획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클라이언트도 낯설어했지만, 시공 후에는 오히려 정돈된 느낌이 좋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전통의 방식이 현대 설계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경험이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전통 조경 관련 자료에서도 한국 전통 정원의 공간 구성이 직선과 기하학적 질서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국립문화재연구원). 처마의 곡선, 버선의 곡선 같은 이미지가 워낙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보니 전체를 곡선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직선이 구조의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통조경을 지향하는 설계자라면 곡선을 잘 그리는 것보다 직선을 어떻게 품격 있게 구성할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게 불국사 가구식 석축이 1,200년 넘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낍니다.

불국사 가구식 석축을 단순히 오래된 유물로만 바라보기엔 아깝습니다. 경사 지형을 직선과 격자 구조로 정복하면서도 주변 자연과 어색함 없이 어우러지는 이 석축의 논리는, 지금 조경과 건축을 공부하는 분들이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불국사에 가시게 된다면 청운교와 백운교 계단만 보지 말고, 그 옆으로 이어지는 석축의 구조를 한 번 천천히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C%A3%BC_%EB%B6%88%EA%B5%AD%EC%82%AC_%EA%B0%80%EA%B5%AC%EC%8B%9D_%EC%84%9D%EC%B6%95
https://www.cha.go.kr
https://www.nrich.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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