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시공 회사에 다닌다는 건, 설계도면 위의 선이 실제 땅 위에서 살아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이다. 나는 유니텍홈즈에서 일하면서 씨토포스(CTOPOS)와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그때 몸으로 익힌 것들이 지금 내 조경관의 뿌리가 됐다.
씨토포스, 그리고 최신현 대표
씨토포스(CTOPOS)를 처음 접한 건 설계 도면을 통해서였다. 다른 사무소 도면과 뭔가 달랐다. 시설물 하나하나가 기성품이 아니었다. 재료의 결부터, 치수의 디테일까지 현장마다 새로 그려져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건 씨토포스의 원칙이었다. 최신현 대표는 전국 어디를 설계해도 같은 시설물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전이면 대전의 재료, 제주면 제주의 맥락, 그 장소에 맞는 것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다. 처음엔 그게 왜 중요한지 몰랐다. 현장을 몇 군데 같이 하고 나서야 조금씩 이해가 됐다.
CTOPOS라는 이름도 그렇다. C는 Creative, 그리고 TOPOS는 그리스어로 '땅'이다. 창조적인 땅. 이름부터 철학이 담겨 있었다.
첫 번째 현장 — 무안 회산백련지 데크
전남 무안에 있는 회산백련지는 동양 최대 백련 자생지다. 313,000㎡ 규모의 연못에 2001년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이 현장에서 우리 유니텍홈즈가 맡은 건 연못 위를 가로지르는 수중 잔교(데크) 시공이었다.
현장에 처음 내려갔을 때 솔직히 막막했다. 수면 위에 목재 데크를 올려야 하는데, 연꽃 자생지를 해치지 않으면서 구조물을 세워야 했다. 기초 공사 하나에도 생태 훼손 최소화를 고려해야 했다. 도면엔 나와 있지 않은 판단들이 현장마다 요구됐다.
씨토포스 측에서는 '연의 모양'을 데크 동선에 담았다. 하엽길, 하경길, 연화광장, 연자광장, 연우광장.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연의 형태에서 공간 이름을 따왔다. 단순히 편하게 걷는 길이 아니라, 걸으면서 연꽃의 생애주기를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원형 데크 광장은 야외 음악회와 축제도 열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능하게 됐다.
시공 과정에서 목재 선정에 특히 공을 들였다. 수중 환경에서 오래 버티는 재료, 연꽃과 시각적으로 어우러지는 색감. 자연친화적인 목재교로 완성된 회산백련지 데크는 지금도 무안의 대표 경관이 되었다.

두 번째 현장 — 강동 허브천문공원
서울 강동구 둔촌동, 일자산 기슭의 배수지 상부에 조성된 이 공원은 처음 봤을 때 '이런 공원이 서울에 있었나?' 싶었다.
강동 허브천문공원은 천·지·인(天地人)의 삼재사상과 음양오행 사상을 공간 개념으로 풀어낸 조경 작품이다. 외원은 땅을 본떠 각진 형태로, 내원은 하늘을 본떠 둥근 형태로 설계됐다.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동양 우주관을 공간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씨토포스가 설계한 이 공원에서 유니텍홈즈는 시공 협력사로 참여했다. 허브원과 자생원, 약초원, 암석원, 온실 등의 공간 조성 과정에서, 도면의 의도를 현장에서 구현하는 역할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닥 조명 작업이었다. 직경 75m 천문도를 공원 바닥에 그대로 옮겨놓은 282개의 오색 별자리 조명. 낮엔 허브 정원이고, 밤엔 별자리가 바닥에 펼쳐지는 공원.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조명 배선과 포장 시공의 정밀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배웠다.
전망데크도 인상적이었다. 공원 동북쪽에서 길동생태공원과 아차산, 불암산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뷰. 이 전망대는 2006년 강동구 우수 조망점으로 선정됐는데, 그 시선을 설계 단계부터 의도했다는 게 현장에서 느껴졌다.

세 번째 현장 — 서서울호수공원
씨토포스와 함께한 현장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곳이다.
서서울호수공원은 1959년부터 2003년까지 가동된 신월정수장 부지를 공원으로 전환한 프로젝트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됐던 노후 산업 부지가 시민 공원이 된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특별한 미션이었다.
설계 키워드는 생태·소통·재생이었다. 씨토포스 최신현 대표 팀은 정수장의 구조물을 철거하지 않았다. 수조, 여과지, 콘크리트 구조물들을 공원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산업의 흔적이 곧 이 공원만의 얼굴이 된 것이다.
유니텍홈즈는 이 현장에서 조경 시설물 시공을 맡았다. 티크 데크 설치, 수경 시설 주변 마감, 식재 공간 조성 등. 특히 정수장의 콘크리트 수로 위로 수목을 올려 놓은 고가 수로 플랜터 구간은 기술적으로도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구조 하중 계산부터 방수 처리, 토심 확보까지 일반 식재 공간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2009년 완공 후 이 공원은 2011년 미국조경가협회(ASLA)에서 명예상(Honor Award)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구 정수장 시설의 통합 방식이 탁월하며, 자연과 산업의 병치가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그 현장에 내 손이 닿아 있다는 게 아직도 뿌듯하다.
현장에서 배운 것 — 설계와 시공은 하나다
씨토포스와 함께 일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건, 설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다.
최신현 대표는 설계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현장을 방문한다. 도면이 현장에서 다르게 구현되는 걸 한 번 목격한 뒤로, 자비를 들여서라도 시공 과정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우리 시공팀 입장에서는 오히려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동력이 됐다.
설계가 땅에 쓴 글이라면, 시공은 그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과정이다. 우리 유니텍홈즈는 그 발화의 역할을 했다. 회산백련지 연꽃 위 데크, 강동 허브천문공원의 별자리 바닥, 서서울호수공원의 재생 공간들. 지금도 그 현장들을 지나칠 때면 남다른 감정이 올라온다.
내 손으로 만든 공간에 오늘도 누군가가 걷고 있다.
씨토포스(CTOPOS)의 작품들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지금도 시민들의 일상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국회대로 지하화 선형공원 '적구창신' 프로젝트까지, 최신현 대표의 행보는 현재진행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