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라에 지붕을 얹으면 건축물이 될까요? 이 질문이 황당하게 들린다면, 아직 조경 현장을 모르시는 겁니다. 저는 얼마 전 족욕장 설계를 의뢰받아 쉘터까지 포함한 도면을 완성했다가, "지붕이 있으니 건축물"이라는 한마디에 설계를 통째로 반납해야 했습니다. 수치도, 근거도 없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오래 머릿속에 남았는지 모릅니다.

파고라, 쉘터, 정자 — 이 셋의 차이를 알고 계십니까
조경을 다루다 보면 파고라, 쉘터, 정자라는 세 단어를 거의 매일 씁니다. 그런데 막상 이 셋의 정확한 개념 차이를 물어보면 머뭇거리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파고라(Pergola)란 기둥과 보, 서까래만으로 구성된 개방형 구조물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위를 완전히 막지 않고 격자형 지붕 틀만 있는 형태입니다. 여기에 차양 역할을 하는 지붕재를 덧씌우면 쉘터(Shelter)가 됩니다. 쉘터에 마루 구조까지 더해지면 우리 전통 건축의 이름을 빌려 정자라고 부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조경시설물(Outdoor Furniture, Landscape Architecture)의 하위 범주입니다. 조경시설물이란 외부 공간을 구성하고 이용자의 편의와 경관을 위해 설치되는 모든 인공 구조물을 뜻합니다.
그런데 현실의 행정 창구는 이 구분을 이렇게 씁니다. '파고라 설치'는 도시과 소관, '정자 설치'는 건축과 소관. 구조물의 본질이 아니라 이름 하나로 담당 부서가 갈리는 겁니다. 제가 직접 부딪혀 봤을 때 이보다 더 비논리적인 행정 구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결국 현장에서는 마찰을 피하기 위해 쉘터나 정자를 설치하더라도 공사 명칭을 반드시 '파고라 설치공사'로 표기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생겼습니다.
건축법이 조경을 삼키는 방식
건축법 제2조는 건축물을 "토지에 정착하는 공작물 중 지붕과 기둥 또는 벽이 있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공작물이란 토지에 고정적으로 설치된 모든 인공 구조물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건축물은 그 공작물의 일부 유형입니다. 이 조문 하나를 자의적으로 적용하면 지붕이 붙은 조경시설물은 모두 건축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도권의 한 구청에서 옥상 조경 정원에 설치된 전망휴게시설을 "지붕과 기둥이 있으므로 건축물"로 규정해 불법 증축 처분을 내린 사례가 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같은 공문에 "건축물의 옥상 부분은 조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문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국토교통부 고시 조경기준 제3조는 조경시설을 "파고라, 벤치, 환경조형물, 수경시설, 휴게·여가·관리 시설 및 이와 유사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출처: 국토교통부 조경기준). 파고라 자체가 지붕과 기둥을 갖출 수 있는 구조물인데, 지붕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경시설이 아니라고 하는 건 법 조문을 스스로 부정하는 논리입니다.
제가 경험한 족욕장 사례도 같은 맥락입니다. 기존 파고라 자리에 족욕 시설과 쉘터를 함께 계획했는데, 돌아온 답은 "지붕이 있으니 건축 용역으로 따로 발주하겠다"였습니다. 반문하지 않은 건 포기해서가 아닙니다. 손익을 계산해봤을 때 싸워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 씁쓸함은 지금도 가시질 않습니다.
이처럼 건축 분야가 인접 분야로 무한 확장하는 구조적 근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건축법 제2조의 광의적 정의가 조경시설물에도 적용 가능한 해석 여지를 줌
- 조경 분야에는 업역을 방어할 전용 법 체계가 사실상 부재
- 행정 담당자의 재량 해석이 판례처럼 전례로 굳어지는 관행
- 조경기술사 등 전문 자격 보유자의 설계임에도 건축 허가·신고 절차를 요구하는 사례 반복
조경과 건축, 업역의 경계는 왜 이렇게 흐릿한가
건축가는 노출 전망대, 캐노피, 대형 계단, 가벽 등 내부 공간이 없는 구조물도 설계합니다. 이런 결과물은 엄밀히 건축물(지붕·벽·기둥으로 내부 공간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조경적 구조물 혹은 환경조형물(Environmental Sculpture)에 가깝습니다. 환경조형물이란 외부 환경과 어우러지는 예술적·기능적 조형 구조물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건축가가 이런 외부 구조물을 설계해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반면 조경기술사가 지붕 달린 전망휴게시설을 설계하면 건축법 위반 여부를 따집니다. 이 비대칭 구조는 두 분야의 법적 보호 수준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나라 조경 분야가 대학 교육을 시작한 지 5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경 업역을 명확하게 보호하는 독립적 법 체계는 여전히 갖춰지지 않았습니다(출처: 한국조경학회). 건축 분야는 건축법, 건축기본법, 건축사법 등 촘촘한 법 체계를 자기 방어막으로 두고 있지만, 조경은 조경진흥법 하나로 맞서야 하는 상황입니다.
토목구조물(Civil Structure)과 건축축조물(Building Architecture), 조경시설물, 환경조형물은 개념적으로 분명히 다른 범주입니다. 토목구조물이란 도로, 교량, 집수정, 측구 등 기반 시설을 구성하는 구조물을 뜻합니다. 이 네 범주는 설계 목적, 적용 기준, 전문 자격 체계가 모두 다른데도, 시공 결과물의 외형이 유사하면 가장 강한 법 권한을 가진 분야가 판정을 내리는 구조가 됩니다. 그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조경 전문가가 스스로 바꿔야 할 것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50년 역사의 조경 분야가 이 정도로 법적 방어력이 취약하다는 사실이요. 제가 현장에서 쌓은 경험으로는, 개별 전문가들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반박해도 행정 처분 한 장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순간이 반복됩니다. 공무원과 싸워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넘어갈 때마다 그게 나쁜 전례 하나로 굳어진다는 것도 압니다.
문제는 이 전례들이 쌓이면 다음 세대의 조경가들이 더 좁은 업역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경기술사, 조경기사 등 전문 자격 체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격이 보장하는 업무 범위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자격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집니다. 분야 내부의 결집력을 높이고, 개별 사례에 대한 적극적 이의 제기를 통해 잘못된 관행이 전례로 굳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조경 실무자라면, 유사한 행정 처분을 받았을 때 개인 차원에서 조용히 포기하기보다 관련 학회나 협회에 사례를 공유하시길 권합니다. 작은 기록 하나가 제도를 바꾸는 근거가 됩니다.
참고: https://www.la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4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