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처음엔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그냥 막연히 "도토리나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식물도감을 펼쳐보니 "도토리나무"라는 나무는 세상에 없고,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는 전부 참나무속(Quercus)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침엽수의 대표가 소나무라면, 활엽수의 대표는 단연 참나무입니다. 전 세계에 500종이 넘는 참나무가 있고, 우리 주변에도 이미 여섯 종 이상이 자라고 있습니다.

500종의 참나무, 어떻게 구분할까
참나무의 속명 퀘르쿠스(Quercus)는 켈트어로 '질이 좋은 목재를 생산하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쓸모 있는 나무'로 인정받았다는 방증인데, 저는 이 사실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의 문명이 지역마다 달랐는데도 같은 나무에 같은 의미를 붙였다는 게 단순한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참나무를 공부하다 보면, 종류가 너무 많아서 금방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전 세계적으로 500~600종에 달하고, 한반도에서만도 낙엽활엽수 6종과 상록활엽수 6종이 자생합니다. 제가 직접 산을 다니면서 느낀 건데, 비슷비슷하게 생겼어도 잎 하나만 잘 보면 구분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구분 요령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잎 뒷면이 흰빛을 띠고 바늘 모양 톱니가 있으면 굴참나무
- 잎맥이 17개 이상이면 밤나무(참나무가 아님)
- 잎이 가장 크고 끝이 뭉툭하며 잎자루가 거의 없으면 떡갈나무
- 잎과 열매가 작고 아담하면 졸참나무
- 도토리 받침(각두)이 도토리 전체를 감싸듯 깊으면 굴참나무
여기서 각두(殼斗)란 도토리의 아랫부분을 감싸고 있는 컵 모양의 받침 구조를 말합니다. 나무마다 이 각두의 크기와 형태가 달라서 수종 감별의 핵심 기준이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도감보다 실물을 직접 손에 쥐어봐야 감이 옵니다.
낙엽활엽수(落葉闊葉樹)란 가을에 잎을 모두 떨구는 넓은 잎 나무를 가리킵니다. 한국에 자생하는 참나무 6종, 즉 신갈나무·굴참나무·상수리나무·졸참나무·갈참나무·떡갈나무가 여기에 속합니다. 반면 가시나무·종가시나무·붉가시나무 같은 상록활엽수는 난대 기후에서 자라며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번역 오류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영어 oak를 예전 번역서에서는 '떡갈나무'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일본에서 처음 서양 문헌을 번역할 때 카시(樫)로 옮긴 것을, 한국에서 다시 한자를 그대로 읽어 '떡갈나무 견(樫)'으로 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떡갈나무는 동북아시아 고유 수종이라 서양 신화나 고전 문학 속 oak가 떡갈나무일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서양에서 oak라고 부르는 나무는 보통 유럽참나무(Quercus robur)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출처: 국립수목원).
참나무의 쓰임새와 꽃가루 알레르기, 솔직한 이야기
"참나무"라는 이름에서 접두사 '참-'은 '진짜', '좋은'이라는 뜻입니다. 한자명도 진목(眞木), 즉 '진짜 나무'입니다. 이름만 봐도 얼마나 두루 쓰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제가 직접 조사해보니 참나무의 활용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목재 분야에서는 목재의 단단한 조직을 가리키는 경재(硬材) 중에서도 참나무는 내구성이 뛰어난 쪽으로 분류됩니다. 경재란 활엽수에서 얻는 단단하고 밀도 높은 목재를 뜻하는데, 참나무는 이 경재의 대표 수종 중 하나입니다. 서양에서는 오크통, 즉 참나무로 만든 숙성 통에 와인이나 위스키를 담아 숙성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참나무의 페놀 성분이 열에 의해 변환된 바닐린이 술에 녹아들어 특유의 바닐라 향을 만들어냅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참숯 제조와 버섯 재배에 쓰입니다. 참숯은 참나무를 고온에서 구워 만든 숯으로, 탈 때 매연이 적고 화력이 오래 유지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소나무 장작이 송진 때문에 매캐한 연기를 많이 내는 것과 대조됩니다. 제 경험상 고기를 구울 때 참숯을 쓰면 불 조절이 훨씬 편하고, 고기에 잡냄새가 배지 않아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표고버섯 재배의 대목(臺木)으로도 참나무가 쓰입니다. 대목이란 버섯 균사가 파고들어 영양을 공급받는 원목을 뜻합니다. 참나무 원목에서 자란 표고버섯은 향이 깊고 육질이 단단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참나무가 한국 꽃가루 알레르기의 주범이라는 사실입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의 약 70%가 참나무 꽃가루에서 기인한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기상청 국가기후데이터센터). 소나무 꽃가루가 양은 훨씬 많지만 항원성(抗原性)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입니다. 항원성이란 우리 몸의 면역계를 자극하여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의 성질을 뜻합니다. 소나무 꽃가루는 오랜 세월 한반도 사람들이 노출되면서 면역계가 어느 정도 적응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제가 봄마다 눈이 빨개지고 콧물이 쏟아지는 이유가 소나무가 아니라 참나무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괜히 소나무에 억울한 누명을 씌웠던 것 같아 마음이 좀 찔렸습니다.
참나무는 도토리를 통해 산짐승에게도 중요한 먹이를 제공합니다. 다람쥐와 멧돼지가 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비축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 같은 곤충도 참나무 수액을 좋아합니다. 쓰임새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참나무는 산 생태계 전반을 지탱하는 키스톤 수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참나무는 이름처럼 진짜 나무입니다. 가구재, 참숯, 버섯 재배, 술 숙성, 군함 건조까지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쓰임새를 증명해 온 나무입니다. 봄에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하다면 주변 참나무 숲을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을 다닐 때 발밑에 도토리가 굴러다닌다면, 그 나무가 어떤 종인지 잎과 각두를 한번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알면 알수록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나무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B0%B8%EB%82%98%EB%AC%B4
https://www.forest.go.kr
https://data.km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