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3 창덕궁 후원, 조경가의 눈으로 걷다 나는 조경을 업으로 삼은 지 꽤 됐다. CAD 도면을 그리고, 수목 리스트를 뽑고, 시공 현장을 뛰어다니는 일상. 그런 내가 창덕궁 후원에 들어서면, 매번 연필을 내려놓고 싶어진다. 이 공간 앞에서는 '설계'라는 말이 민망해진다.후원 입구, 첫 발을 들이는 순간돈화문을 지나 후원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안내를 받아 숲길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다른 세계다.도심 한복판인데 갑자기 새소리만 들린다.조경가로서 이 진입 동선을 분석하면, 일부러 숲을 통과하게 만들어 '전이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궁궐의 일상 공간에서 후원의 비일상 공간으로 넘어가는 심리적 완충 구간. 현대 조경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인데, 조선시대 조경가들은 이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울창한 나무들 사이 좁은 길을 5분쯤 .. 2026. 5. 2. 한국·중국·일본 정원, 직접 걸어보고 알게 된 것들 유럽 정원을 다 돌아보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우리 아시아 정원은 어떤 철학을 담고 있을까?" 그 질문 하나가 나를 창덕궁 후원으로, 쑤저우의 골목으로, 교토의 이른 아침으로 이끌었다.유럽과는 전혀 다른 출발점유럽 정원을 경험한 직후 아시아 정원을 보면, 첫 반응이 대부분 비슷하다.*"왜 이렇게 작지?"**"왜 이렇게 숨겨져 있지?"*프랑스 베르사유처럼 광활하게 펼쳐지는 압도감도 없고, 영국 큐 가든처럼 탁 트인 잔디밭도 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시아 정원은 다른 방식으로 빨아들인다. 유럽 정원이 '보여주는' 정원이라면, 아시아 정원은 '느끼게 하는' 정원이라는 걸 알게 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한국 정원 — 자연에 스며드는 겸손한 아름다움정원이 자연을 흉내 내지 않는.. 2026. 5. 2. 영국·프랑스·이탈리아 정원, 직접 걸어보고 알게 된 것들 유럽 여행에서 박물관과 카페만 돌아다니던 내가, 어느 날 정원 하나에 발목이 잡혔다. 그 이후로 세 나라의 정원을 일부러 찾아다니게 됐고, 지금은 정원 스타일을 보면 그 나라의 미감과 철학이 보인다는 걸 느낀다.처음엔 그냥 지나쳤던 공간솔직히 말하면, 처음 유럽에 갔을 때 정원은 그냥 '배경'이었다. 사진 찍기 좋은 곳, 잠깐 쉬는 곳. 그런데 파리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서 한 시간 넘게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이게 그냥 꽃밭이 아니구나."그날 이후로 나는 정원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유럽이지만 세 나라의 정원은 놀라울 만큼 달랐고, 그 차이를 알고 나니 여행이 훨씬 깊어졌다. 프랑스 정원 —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방식완벽한 대칭, 통제된 아름다움프랑스 정원의.. 2026. 5. 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