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벚나무를 오랫동안 '꽃만 예쁜 나무'로만 봐왔습니다. 봄에 잠깐 피었다 지고, 여름엔 그냥 초록 잎사귀, 가을엔 단풍. 그게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바비큐를 하다가 훈연목으로 벚나무 가지를 써본 뒤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파고들다 보니, 이 나무에 얽힌 역사적 논쟁이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목재 활용 — 꽃만 보고 나무를 몰랐습니다
벚나무 목재를 처음 훈연재로 써본 건 우연이었습니다. 봄철에 지자체가 가로수 가지치기를 하고 난 뒤 잘린 가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길래, 그냥 가져다 말려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대단한 소재였습니다.
훈연재(smoking wood)란 바비큐나 훈제 요리를 할 때 연기와 향을 더하기 위해 태우는 목재를 말합니다. 히코리나 체리우드 같은 수입 훈연재가 비싸게 팔리는 시장에서, 벚나무는 장미나무속(Rosaceae)에 속하는 과실나무류 목재 특유의 고급스럽고 달콤한 향기를 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쇠고기에도, 돼지고기에도, 닭고기에도 두루 잘 어울렸습니다. 수입 체리우드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한반도 웬만한 산에서 자생하고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진 나무다 보니, 봄철 가지치기 시즌만 잘 노리면 거의 공짜로 구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목재 자체도 우수한 편입니다. 결이 곱고 경도(硬度)가 높아 가구나 식기를 만드는 데 오래전부터 쓰였습니다. 여기서 경도란 재료가 외부 힘에 얼마나 저항하는지를 나타내는 성질로, 경도가 높을수록 가공은 어렵지만 내구성이 좋습니다. 실제로 잘 건조된 벚나무는 가정용 톱으로는 잘 잘리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옹이에 대패를 걸면 이가 빠질 정도입니다. 팔만대장경판의 절반 이상이 벚나무 재질이라는 사실만 봐도 그 내구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껍질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수피(樹皮), 즉 나무껍질이 매우 질겨서, 조선 시대에는 각궁(角弓)의 겉면을 마감할 때 벚나무 껍질로 감아 완성했습니다. 각궁이란 물소 뿔과 힘줄, 나무 등을 복합 재료로 만든 조선의 전통 합성궁으로, 당시 주력 무기였습니다.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함경도에서 초가 대신 벚나무 껍질로 지붕을 올리는 방식을 목격하고 감탄했다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여간해선 벗겨지지 않는 응집력이 그 이유였다고 합니다.
다만 이 나무를 다루는 데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벚나무는 일단 상처가 나면 취약한 수종입니다. 가지를 꺾으면 노출된 단면부터 목재 부후(腐朽)가 시작됩니다. 목재 부후란 균류나 수분에 의해 목재 조직이 분해되어 썩어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때문에 가지치기를 할 때도 최소한의 절단만 해야 하고, 절단면 관리도 신경 써야 합니다. 의외로 까다로운 수종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수명이 짧다고 알려진 것도 오해입니다. 구례 화엄사에는 수령 400년으로 추정되는 올벚나무가 지금도 살아 있고, 일본에는 천 년이 넘었다고 전해지는 올벚나무가 여러 그루 있습니다. 나무 자체가 단명한다기보다는, 관리 방식에 따라 수명이 크게 달라지는 수종이라고 보는 시각이 더 정확합니다.
벚나무가 도심 가로수로 쓰이는 이유도 이해가 됩니다. 봄에는 꽃, 가을에는 단풍으로 두 번의 계절 경관을 만들어 주고, 척박한 도심 환경에서도 비교적 잘 버팁니다. 물론 낙화 시기에 바닥이 쉽게 더러워지는 단점은 있습니다. 은행나무처럼 악취가 나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원산지 논쟁 — 워싱턴의 벚꽃은 어디서 왔는가
벚나무 원산지를 둘러싼 논쟁은 오래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벚꽃 하면 일본을 먼저 떠올리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논쟁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변에는 매년 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벚꽃 축제가 열립니다. 1912년 일본이 우정의 표시로 기증한 벚나무 3,000여 그루가 그 시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1910년 시애틀 항구에 처음 도착한 일본산 묘목들은 검역(植物檢疫) 과정에서 병증이 확인되어 당시 태프트 대통령의 명령으로 전량 소각됐습니다. 검역이란 해외에서 유입되는 식물이나 동물의 병충해를 차단하기 위한 법적 검사 절차를 말합니다. 이후 1912년에 재기증된 3,029그루가 워싱턴에 식재됐고, 이 나무들에 대해 미국 농무부(USDA)가 실시한 유전자 분석에서 제주 왕벚나무와 동일한 염기서열을 가진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알려졌습니다. 여기서 염기서열(DNA sequence)이란 생물의 유전 정보를 구성하는 염기들의 배열 순서로, 이것이 일치한다는 것은 동일한 생물학적 기원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왕벚나무(Prunus × yedoensis)의 자생지(自生地)에 대한 논의는 오래 이어져 왔습니다. 자생지란 인간이 재배하거나 이식하지 않고 자연 상태에서 해당 종이 저절로 자라는 지역을 말합니다. 제주도 한라산에서 야생 왕벚나무가 발견된다는 사실은 학계에서도 이미 인정된 부분입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제주도 왕벚나무와 일본의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는 유전적으로 유사하나 서로 다른 품종으로 분류된다는 결론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출처: 국립산림과학원). 즉 완전히 같은 나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벚나무의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훈연재로서의 활용도가 높으며, 장미과 특유의 달콤하고 우아한 향기를 낸다
- 목재 경도가 높아 가구, 식기, 전통 무기 제작 등에 역사적으로 쓰였다
- 수피(껍질)의 인장강도가 강해 건축 자재로도 활용된 기록이 있다
- 상처 이후 부후에 취약하여 가지치기 시 최소 절단 원칙이 필요하다
- 제주 왕벚나무는 소메이요시노와 유전적으로 유사하나, 현재 별개 품종으로 분류되는 추세다
1941년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내에서 워싱턴의 벚나무를 베어버리자는 움직임이 일었을 때, 당시 미국에서 활동하던 한국 측 인사들이 이 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이라고 주장하여 벌목을 막았다는 기록은 단순한 원산지 다툼을 넘어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장면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나무들은 지금도 포토맥 강변에 서 있습니다.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든, 이 나무들이 한반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출처: USDA Forest Service).
벚나무를 단순히 봄꽃 나무로만 보기엔 아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을 지탱하고, 조선 궁수의 활을 감싸고, 함경도 민가의 지붕을 올리고, 워싱턴의 봄을 만들어 온 나무입니다. 봄철 가지치기 때 나온 가지 하나를 훈연재로 써보시길 권합니다. 꽃이 지고 난 뒤에도 벚나무는 여전히 할 말이 많은 나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