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같은 짧은 사랑아." 오래된 노래 가사 한 줄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올여름은 유독 나팔꽃이 많습니다. 칡이나 환삼덩굴보다 오히려 나팔꽃 덩굴이 수목을 타고 올라간 모습이 더 눈에 띌 정도예요.

나팔꽃, 영어로는 Morning Glory
나팔꽃의 영어 이름은 Morning Glory, 아침의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새벽 3~4시에 봉오리가 벌어지기 시작해 아침 9시면 활짝 핍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아침에 보여주고 오후가 되면 꽃잎을 오므리고 조용히 져버려요. 그래서 꽃말도 덧없는 사랑, 허무한 사랑입니다.
참고로 고구마꽃과 메꽃도 나팔꽃과 같은 메꽃과 집안 식물이에요. 생김새가 비슷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루짜리 꽃인데 왜 여름 내내 피어있을까
꽃 하나의 수명은 반나절에 불과하지만 나팔꽃은 여름 내내 피어있습니다.
비결은 간단합니다. 매일 새로운 꽃이 피는 거예요. 줄기 하나에서 꽃봉오리가 계속 맺히고, 하나가 지면 다음 꽃이 피고, 또 다음 꽃이 피는 방식으로 여름을 통째로 살아냅니다. 꽃 하나의 삶은 덧없지만 그 덩굴은 멈추지 않아요.
짧은 사랑을 반복하며 여름을 버텨내는 것. 어쩌면 그게 나팔꽃의 진짜 생존 전략일지도 모릅니다.
올여름 조경 현장에서 유독 눈에 띈다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해마다 어떤 식물이 많은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올여름은 단연 나팔꽃이에요.
칡이나 환삼덩굴이 수목을 감고 올라오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나팔꽃 덩굴이 소나무며 조경수 가지를 타고 올라간 모습이 유독 자주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인은 지금이 나팔꽃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시기라 눈에 띄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올여름이 특별했거든요.
고온 가뭄이 만들어낸 나팔꽃의 계절
올여름은 기록적인 고온에 가뭄까지 겹쳤습니다.
칡이나 환삼덩굴은 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식물입니다. 가뭄이 계속되면 이 녀석들도 약해질 수 있어요. 반면 나팔꽃은 건조하고 뜨거운 환경에 꽤 강한 편입니다.
경쟁 식물들이 가뭄에 치이는 동안 나팔꽃은 빈 자리를 파고들어 세력을 넓힌 겁니다. 올여름 기후가 나팔꽃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어준 거예요.
아름답지만 조경 현장에선 골칫거리
나팔꽃은 분명 아름다운 꽃입니다. 이른 아침 보라빛, 흰빛, 붉은빛 꽃이 활짝 핀 모습은 누가 봐도 예뻐요.
그런데 조경 현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덩굴이 수목을 타고 올라가면 햇빛을 차단하고 수형을 망가뜨립니다. 어린 나무는 나팔꽃 덩굴에 감겨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요.
꽃말처럼 덧없이 사라지면 좋으련만, 조경 현장의 나팔꽃은 덧없기는커녕 여름 내내 끈질기게 올라옵니다. 잘라도 다음 날 또 뻗어있고, 뽑아도 씨앗은 이미 땅속에 퍼져있어요.
아침에 피고 오후에 지는 짧은 꽃이지만, 그 덩굴의 생명력은 짧지 않습니다. 올여름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조경 현장의 새로운 풍경이 나팔꽃 덩굴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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