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 공공 외부공간 조경 계획 | SketchUp 설계
"사람들이 여기서 왜 멈춰야 하지?"
넓고 깨끗하게 포장된 광장이었지만, 그 안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이 프로젝트는 그 질문에서 시작됐다.
1. 대상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구례군 통합어울림센터는 읍사무소와 복합문화시설이 함께 들어선 공공 복합시설이다. 본관은 3~4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이고, 서측에 ㄱ자형 단층 별동이 자리한다. 그 사이 약 1,500㎡의 중앙 광장이 펼쳐지는데, 첫 현장 확인에서 문제가 바로 보였다.
광장 바닥에는 동심원 패턴 포장이 깔려 있었다. 나쁘지 않은 디자인이었지만 그늘 한 점 없는 포장 광장은 여름에 아무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공간이 된다. 볼라드가 줄지어 서 있고, 녹지는 경계부에만 선형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공간이 '있었지만' 장소가 '없었다.'
▲ 현황 평면도 — 경계부 녹지와 동심원 포장 중심의 단순한 구성
가장 먼저 든 고민은 '무엇을 채울 것인가'가 아니라 '왜 사람들이 여기 오래 있어야 하는가'였다. 공공광장의 흔한 실수는 기능을 채워 넣는 것이다. 분수, 조형물, 포장 패턴… 하지만 정작 그늘도 없고 앉을 곳도 편하지 않으면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2. 일조량부터 분석했다
설계에 앞서 SketchUp의 일조 시뮬레이션을 먼저 돌렸다. 6월(하지)과 3월(춘분)을 기준으로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 — 총 6개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데이터는 분명했다. 여름 정오 중앙 광장은 그늘이 전혀 없었고, 서측 별동 구조물 하부는 3월에도 꽤 깊은 그늘이 형성됐다.
→ 중앙 광장에는 반드시 수목을 심어 그늘을 만들어야 한다.
→ 별동 구조물 하부의 기존 그늘은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 오후 3시 그늘 패턴을 따라 방사형 녹지와 벤치 위치를 결정한다.
데이터 기반으로 식재 위치와 쉼터 배치를 결정하자 설계가 훨씬 명확해졌다. 어디에 나무를 심을지, 어디에 앉을 자리를 만들지가 감이 아니라 근거로 결정됐다.
3. 세 개의 구역으로 공간을 나눴다
일조 분석을 바탕으로 외부공간을 성격이 다른 세 구역으로 나눠 접근했다. 하나의 테마로 통일하는 것보다, 각 구역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광장 한가운데 대형 수목 한 그루를 심었다. 마운딩 위 은목서·소나무, 자연석 쌓기 경계, 원형 목재 벤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구심점이 되길 바랐다.
중심 마운딩에서 방사형으로 식재지를 뻗어냈다. 홍단풍·벚나무 등 계절수종으로 사계절 다른 표정을 만들고, 곡선 벤치를 따라 걷고 싶은 동선을 유도했다.
구조물 하부의 그늘을 낭비하지 않으려 했다. 전통 목재 격자 가림막을 세우고 벤치·평상을 배치해 반외부적인 조용한 쉼터를 만들었다.
▲ 계획안 마스터플랜 — 중앙 수목 마운딩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구성
4. 현황과 계획, 무엇이 달라졌나
| 항목 | 현황 | 계획 |
|---|---|---|
| 중앙 광장 | 전평탄 포장 + 동심원 패턴 | 후수목 마운딩 + 자연석 경계 + 원형 벤치 |
| 식재 | 전경계부 선형 관목 식재 | 후녹음수 다층 배식 + 계절 수종 도입 |
| 별동 파사드 | 전금속 루버형 창호 | 후전통 목재 격자 스크린 |
| 휴게시설 | 전강관 퍼걸러 + 볼라드 | 후퍼걸러 + 곡선 목재 벤치 + 식재 마운드 통합 |
| 보행 동선 | 전직선형 동선 | 후곡선형 동선 — 걸음을 늦추도록 |
| 공간감 | 전비어있는 공공 광장 | 후머무르고 싶은 정원형 광장 |
5. 별동 파사드 — 전통을 끌어들인 이유
별동 파사드를 바꾸기로 했을 때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었다. 현대식 금속 루버도 기능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구례라는 장소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지리산 자락, 섬진강, 전통 한옥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다.
공공건축에서 지역성은 늘 딜레마다. 전통을 너무 직접적으로 끌어오면 촌스럽고, 완전히 외면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표정한 건물이 된다. 한옥 창살의 격자 패턴을 현대적 비례로 재해석하면 어떨까 — 그것이 이 선택의 이유였다.
목재 격자 스크린은 단순히 파사드 디자인이 아니다. Zone 03의 쉼터 공간과 연결되어 내부에서 빛이 격자 무늬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기능과 미감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설계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 목재 격자 스크린 내부 —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쉼터 공간
6. 완성된 계획, 그리고 남은 과제
▲ 계획안 전경 — 진입부에서 바라본 정원형 광장
계획안을 완성하고 나서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여기서 왜 멈춰야 하지?" 이제 대답할 수 있다. 그늘이 있고, 앉을 자리가 있고, 계절마다 다른 꽃과 단풍이 있고, 전통 격자 너머 빛이 들어오는 조용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설계는 도면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목의 규격, 자연석의 질감, 목재의 색상과 마감— 시공 단계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이 계획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그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설계 요약
일조량 분석 → 3개 구역 설정 → 중심 수목 마운딩(Zone 1) + 방사형 녹지 쉼터(Zone 2) + 전통 격자 스크린 휴게공간(Zone 3)의 순서로 설계를 전개했다. '비어있는 광장'을 '머무르는 장소'로 바꾸는 것, 그리고 구례라는 장소의 맥락을 설계 언어로 번역하는 것 — 이 두 가지가 이번 작업의 핵심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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