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교 시절 교수님과 함께 화단을 둘러보던 날이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화단의 식물 하나를 가리키며 이름을 물었는데, 당시 이름을 몰랐던 저는 "잡초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 순간 교수님은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잡초라 말할 수 있지만, 조경가라면 잡초라 말하면 안 됩니다. 들판의 풀 하나, 꽃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 순간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씀이 기억에 남는 건,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도 잡초라 생각하는 식물들이 많습니다. 교수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상적인 조경가의 시선을 심어주려 하신 것이고, 현장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걸 30년을 일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잡초란 무엇인가
사전에서 잡초(雜草)는 "쓸모없이 자라는 풀"이라 정의합니다. 섞일 잡(雜)에 풀 초(草), 즉 뒤섞여 자라는 풀이라는 뜻이에요. 영어로는 Weed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정의 자체에 이미 인간의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쓸모없다"는 판단은 결국 사람이 내리는 것이니까요.
미국의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잡초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 장미밭에서 자라는 민들레는 잡초지만, 들판에 피어난 민들레는 봄을 알리는 꽃입니다. 같은 식물이 장소와 목적에 따라 잡초가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꽃이 되기도 하는 거예요. 영어권 원예계에서는 잡초를 Volunteer plant(자원한 식물)라 부르기도 합니다. 스스로 찾아온 식물이라는 의미예요.
풀베기와 제초를 하는 진짜 이유
조경 현장에서는 풀베기와 제초 작업을 자주 합니다. 미관상의 이유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어떤 목적으로 식재한 수목이나 초화류가 잘 활착(活着)하려면 주변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잡초는 토양 속 수분과 양분을 경쟁적으로 빨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정성껏 심은 나무와 꽃이 잡초에 치여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일이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즉 제초는 단순히 보기 싫은 풀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식물이 충분한 빛, 물, 영양분을 받을 수 있도록 경쟁 식물을 제거하는 목적이 있는 시공 행위입니다. 결국 모든 식물은 의미가 있겠지만, 원하는 지역이나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 식물은 잡초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현장에서 30년을 보내며 내린 결론입니다.
잡초인 줄 알았는데 한방 약재였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조경 현장에서 제초 대상 1순위인 식물들 중에 한방에서 귀하게 쓰이는 약재들이 많다는 겁니다.
민들레는 한방에서 포공영(蒲公英)이라 부릅니다. 동의보감에도 기록된 대표적인 약초로, 간 해독과 면역력 강화, 소화불량, 항염 효과가 있습니다. 뿌리부터 꽃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식물이에요. 길가에서 밟히며 자라는 질경이는 차전자(車前子)라는 이름으로 한방에 쓰입니다. 씨앗인 차전자는 이뇨작용과 염증 완화에 효과가 있어 오랫동안 약재로 활용돼 왔습니다.
조경 현장에서 가장 흔히 제거하는 잡초 중 하나인 쑥은 애엽(艾葉)이라는 이름의 한방 약재입니다. 냉증, 복통, 지혈, 부인병에 쓰이며 단오날 쑥을 뜯어 말리는 풍습이 여기서 나왔어요. 봄철 밭에서 제초 대상이 되는 냉이는 제채(薺菜)라 하여 간 기능 강화와 혈압 조절에 쓰입니다. 여름철 조경 현장을 뒤덮는 생명력 강한 쇠비름은 마치현(馬齒莧)이라는 이름의 약재로 항균, 해독, 피부질환에 활용됩니다. 이름 그대로 어머니에게 이로운 풀인 익모초는 부인병과 생리불순, 혈액순환에 쓰이는 귀한 약재입니다.
이 식물들은 모두 조경 현장에서는 제거 대상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약으로 쓰여온 식물들이에요. 제초 작업을 하다 보면 가끔 이 생각이 납니다. 지금 내가 뽑아내는 이 풀이 누군가에겐 약이 될 수도 있겠다고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교수님의 그 말씀이 30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건,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들판의 풀 하나하나가 다 의미 있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하지만 조경 현장에서는 그 의미 있는 식물이 때로 다른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경쟁자가 되기도 합니다.
잡초를 영어로 Weed라 하지만, 원예계에서 Volunteer plant라 부르는 것처럼,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같은 식물이 달리 보입니다. 조경가로서 30년을 일하면서 느낀 건, 공부는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제초 작업을 하면서 뽑아낸 풀 하나하나에 교수님의 그 말씀이 스칩니다. 모든 식물은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그 의미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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