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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일년초들의 반란, 공공 조경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by 나무러버 2026. 5. 22.

 

 

 
 
 
 

최근 국내 조경 트렌드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과거 공공 조경과 정원 설계의 주류를 이루었던 영구적인 구조물이나 다년생 수목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짧은 생명력을 지닌  ' 일년초 ' 들이 조경의 중심이자 주연으로 당당히 자리잡기 시작한것입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일년초 중심의 조경패러다임 변화와 현장에서 느끼는 그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공공 조경은 일정한 문법을 따랐다. 균일하게 다듬어진 잔디밭, 줄 맞춰 심은 철쭉 생울타리, 교체 주기에 맞춰 심고 뽑는 팬지와 매리골드. 예측 가능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그 무엇보다 '관리하기 쉬운' 조경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도시 공원과 도로변, 공공기관 화단에서 낯선 풍경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정형의 틀을 벗어난 자연스러운 꽃밭, 한 가지 식물이 면적을 장악하는 대규모 군락 식재, 그리고 — 철마다 갈아엎지 않아도 되는, 저절로 피고 지는 꽃들의 귀환.

 

반란의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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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국
Coreopsis tinctoria
국화과 일년초 · 노란빛 들판의 지배자
한번 심으면 씨앗이 떨어져 이듬해 스스로 피어오르는 금계국. 도로 비탈면과 하천 둔치를 뒤덮는 샛노란 군락은 이제 가장 한국적인 봄 풍경 중 하나가 됐다. 관리 비용이 거의 없고 토양 조건을 가리지 않아 공공 조경의 '가성비 황제'로 불린다. 꿀벌과 나비를 불러들이는 생태적 가치도 덤이다.
 
🌸
샤스타데이지
Leucanthemum × superbum
국화과 숙근초 · 흰빛 청순함의 상징
루드베키아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샤스타데이지의 순백 꽃잎과 노란 꽃심은 단연 격이 다르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매년 더 풍성하게 돌아오는 숙근초의 특성 덕분에 '심고 잊어버려도 되는 꽃'으로 설계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도심 속 소규모 주민 정원과 아파트 커뮤니티 가든에서 빠르게 확산 중이다.
 
🌺
양귀비
Papaver rhoeas
양귀비과 일년초 · 단명하지만 강렬한 존재감
겨우 며칠 피었다 지는 꽃이지만, 그 붉음의 농도는 정원 전체를 집어삼킬 듯하다. 관상용 개양귀비는 재배가 자유롭고 씨앗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해가 지날수록 꽃밭의 밀도가 깊어진다. 최근 공원 설계에서 블루 포피와 혼합 식재하여 몽환적인 보라빛·파란빛 연출을 시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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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년초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지만, 일년초는 해마다 조금씩 다른 얼굴로 피어난다. 그 예측 불가능함이야말로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가장 정직한 메시지가 아닐까요.

 

왜 지금, 이 꽃들인가

이 흐름의 배경에는 몇 가지 시대적 요인이 겹쳐 있다.

첫째는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외래종 관상식물 위주의 단일 식재는 탄소 발자국도 크고, 폭염·가뭄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반면 금계국이나 양귀비처럼 건조에 강하고 자생력 높은 꽃들은 훨씬 회복 탄력적이다.

 

둘째는 '와일드 가든(Wild Garden)' 미학의 유입이다. 피트 아우돌프로 대표되는 뉴 퍼레니얼 운동, 뉴욕 하이라인의 야생적 식재 방식이 국내 조경 설계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덜 정돈된 것이 더 아름답다'는 반직관적 미학이 서서히 공공 공간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셋째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 — 예산 압박이다. 계절마다 새 모종을 심고 뽑는 유지 비용이 지자체 조경 예산을 갉아먹는 구조 속에서, 자가 파종과 자연 갱신이 가능한 식물들은 구원투수 같은 존재다.

조경 패러다임 전환의 키워드
  • 관리 조경 → 생태 조경: 꽃의 모양보다 생태적 기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 단일 식재 → 혼합 군락: 여러 종이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식물 공동체 연출
  • 계절 모종 → 자가 파종 식물: 한 번 심으면 스스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정원
  • 정형식 → 비정형식: 직선과 열식보다 유기적이고 흘러가는 형태감
  • 인간 중심 → 생물 다양성 중심: 수분 매개 곤충과 조류를 위한 공간 설계
 

정원이 말하는 것들

일년초의 반란은 단순히 꽃의 종류가 바뀌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 도시 공간을 디자인하는 철학, 그리고 '아름다움'의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줄 맞춘 화단이 '통제된 자연'을 표상했다면, 지금 우리가 환영하기 시작한 것은 '살아 숨쉬는 자연' — 완벽하지 않고, 예측 불가능하고, 해마다 조금씩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그래서 더 진짜 같은 자연이다.

 

금계국이 뒤덮은 노란 언덕, 샤스타데이지가 흔들리는 흰 들판, 양귀비가 만들어낸 붉은 파도. 이 꽃들이 도시 곳곳에 번지는 것을 보며 우리는 아마도 잊고 있던 어떤 감각을 되찾아가는 중일지 모른다 —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법.

이번 봄, 길을 걷다 노란 금계국 군락을 만나거든 잠시 발을 멈춰보자. 그 꽃들은 누군가가 심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자리에서 피어난 것이다. 조경이 허락한 공간 안에서, 자연이 조용히 쓰고 있는 새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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