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추석연휴 아내와난 평소에 보기 힘든 기아와 LG의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순위싸움에 더할나위 없이 중요한 경기였기에 경기장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다행히 기아가 승리를 했고 기쁜마음으로 경기장 밖을 나섰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차박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가까운 담양에 있는 관방제림 근처에서 차박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관방제림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이른 아침 제림 안은 고즈넉했고, 수백 년 된 고목들이 조용히 서 있었어요.
느티나무처럼 생겼는데 뭔가 달랐습니다. 찾아보니 푸조나무였습니다.

1. 푸조나무와의 첫 만남
처음엔 느티나무인 줄 알았습니다. 수형도 비슷하고 잎도 비슷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잎의 질감이 달랐어요. 느티나무보다 잎이 훨씬 거칠고 뻣뻣했습니다.
찾아보니 푸조나무는 느티나무, 팽나무와 같은 느릅나무과 식물이었어요. 이름만 들으면 외래종처럼 들리지만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자라온 토종 나무입니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포구에 많이 자라는 새들이 좋아하는 나무라는 뜻의 포구조목(浦口鳥木)에서 왔다는 설이 있어요. 팽나무와 워낙 닮아서 옛날에는 둘을 구분하지 않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2. 느티나무 · 팽나무 · 푸조나무 — 삼형제 비교
세 나무는 같은 느릅나무과 집안이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저도 느티나무와 팽나무를 현장에서 헷갈릴 때가 있어요. 그만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잎으로 구별하는 법입니다. 느티나무는 잎 전체 가장자리에 톱니가 고르게 있습니다. 팽나무는 잎 윗부분 절반에만 톱니가 있고 아랫부분은 밋밋해요. 푸조나무는 잎 전체에 톱니가 있는데, 잎 표면이 매우 거칠고 까끌까끌한 게 특징입니다. 손으로 만져보면 바로 느낌이 옵니다.
열매로도 구별됩니다. 느티나무는 납작하고 작은 열매, 팽나무는 콩알만 한 동그란 열매가 달리는데 까맣게 익으면 달콤해서 새들이 좋아합니다. 푸조나무 열매는 팽나무 열매와 비슷하지만 더 크고 검게 익어요.
껍질도 다릅니다. 느티나무는 껍질이 비늘처럼 벗겨지고, 팽나무는 매끈한 회색빛 껍질에 혹처럼 볼록볼록한 부분이 있습니다. 푸조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껍질이 회갈색으로 거칠게 갈라집니다.
3. 조경 현장에서 세 나무는 어떻게 다른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쓴 건 단연 느티나무입니다. 도로 가로수로도 많이 심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느티나무는 속성수입니다. 빠르게 자라다 보니 수관이 넓게 퍼져 운전자 시야를 방해하고, 뿌리가 강하게 뻗어 보도블럭을 들어올리는 하자가 반복됐어요. 결국 매년 강한 가지치기를 반복하게 되고 수형은 망가집니다. 느티나무는 넓고 탁 트인 개활지에 심어야 제 모습이 나오는 나무입니다. 가로수로는 맞지 않아요.
팽나무는 남부지방 마을 어귀 정자나무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나무입니다. 바닷바람에도 강해 해안가 방풍림으로도 많이 쓰여요. 느티나무보다 성장이 느리고 뿌리가 상대적으로 덜 문제를 일으킵니다. 노거수가 되면 정말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푸조나무는 조경 현장에서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기르는 사람도 제 주변에서는 딱 한 명, 그것도 한 다리 건너 아는 분이 전남 광양에서 기른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그만큼 대중화되지 않은 나무입니다.
4. 푸조나무가 조경에 안 쓰이는 이유
첫째, 북방한계선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내륙 기준으로 푸조나무가 스스로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지역이 대구입니다.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는 월동이 불가능합니다.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해안가의 따뜻한 지역에서나 제대로 자라요. 전국 조경 시장에서 유통되기 어려운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담양 관방제림이 바로 그 한계선 가까이에 있는 곳이에요.
둘째, 대기오염에 약합니다. 수세가 강하고 병충해도 거의 없는 튼튼한 나무인데, 유독 대기오염에는 약해요. 도심지에서 잘 자라지 못합니다. 가로수나 도심 공원수로 쓰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어요.
셋째, 아는 사람이 적습니다. 남부지방에서는 그나마 볼 수 있지만 조경 시장에서 유통량 자체가 거의 없어요. 심으려 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나무이니 찾는 사람도 없고, 찾는 사람이 없으니 기르는 사람도 없는 악순환이에요.
5. 그러나 미래는 다를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도쿄를 중심으로 그 이북 지역의 도시 가로수와 공원수로 푸조나무를 미래의 나무로 지목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온난화가 진행되면 북방한계선이 올라올 수 있거든요. 실제로 지금보다 따뜻했던 5,000~8,500년 전에는 푸조나무가 일본 활엽수림을 지배했던 나무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기후가 계속 온난화된다면 언젠가 중부지방에서도 푸조나무를 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지금은 대구가 북방한계선이지만, 그 선이 서울까지 올라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관방제림 고목이 가르쳐준 것
추석 아침, 관방제림 고목 앞에 서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경 현장에서 쓰이지 않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푸조나무가 조경에 잘 쓰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분명했어요. 북방한계선, 대기오염 약점, 유통 어려움. 하나하나 따져보니 납득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후가 바뀌면 북방한계선도 바뀌고, 지금은 안 쓰이는 나무가 미래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어요. 300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켜온 관방제림의 푸조나무 고목이, 어쩌면 그 가능성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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