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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조경

재선충과 코로나, 두 전염병 이야기

by 나무러버 2026. 10. 3.

처음 그것을 봤을 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산 어딘가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붉게 변해 있었어요. 작은 붉은 점 하나. 그런데 그 점이 옆으로 퍼졌습니다. 또 퍼졌습니다.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온 산이 피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90% 이상의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되어 죽어버린 거예요. 푸르러야 할 산이 온통 붉고 황량한 죽은 산이 되어버렸습니다.

지인과  '코로나 이전과 이후, 우리 삶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재선충 이전과 이후의 숲이 겹쳐 보였습니다.

코로나와 재선충

코로나와 재선충, 닮은 것들

코로나는 2020년 초 중국 우한의 작은 점에서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멀리 있는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어요. 그런데 그 점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재선충도 똑같습니다. 처음엔 산 한 귀퉁이의 붉은 점 하나. 그 점이 온 산을 피바다로 만들어버립니다.

둘 다 매개체가 있습니다. 코로나는 사람이 옮겼고, 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가 옮깁니다. 솔수염하늘소가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을 때, 그 몸속에 있던 재선충이 소나무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소나무는 재선충이 들어오면 수분 이동 통로가 막히면서 말라 죽습니다. 감염되고 나면 빠르면 한 달, 늦어도 그해 안에 고사합니다. 치료제가 없어요.

그리고 둘 다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막기가 어렵습니다. 코로나가 국경을 넘었듯, 재선충은 산 능선을 넘습니다. 솔수염하늘소는 날아다니니까요.

 

인간의 대응 — 코로나 방제의 두 가지 길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 세계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첫 번째는 적극적 통제입니다. 봉쇄하고, 격리하고, 동선을 추적하고, 마스크를 쓰고, 백신을 맞히는 방식이에요. 단기적으로는 확산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변이 바이러스 앞에 결국 뚫렸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경제적 비용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두 번째는 자연치유 방식입니다. 스웨덴 등 일부 국가가 택했던 집단면역 유도 방식이에요. 초기에는 사망자가 많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회와 경제의 타격은 상대적으로 덜했어요.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어느 쪽이 더 현명했는지 정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두 방식 모두 결국 비슷한 종착점에 도달했고, 바이러스를 완전히 박멸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차이는 그 과정에서 치른 비용과 속도였을 뿐이에요.

 

재선충 방제도 똑같은 갈림길에 서 있다

산림청은 재선충 피해지에서 수종전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감염된 나무만 골라내는 방식이 아닙니다. 재선충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소나무까지 포함해서 해당 구역의 소나무를 완전히 베어낸 뒤, 다른 수종으로 바꿔 심는 방식입니다.

왜 멀쩡한 소나무까지 베어낼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개별 고사목만 제거하는 방식으로는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의 이동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증상이 없어 보여도 이미 잠복 감염 상태인 나무가 있고, 주변 소나무를 남겨두면 매개충이 그 나무를 오가며 반복 감염을 일으킵니다. 개별 처방이 아니라 소나무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으로 재선충이 살 숙주를 제거하는 전략이에요. 적극적 통제의 극단적인 형태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이 방식도 한계가 분명합니다. 재선충의 확산 속도가 수종전환 속도를 앞서고 있어요. 이쪽을 베어내는 동안 저쪽에서 또 붉은 점이 생깁니다. 예산도 한계에 다다랐어요. 건강한 소나무까지 모두 베어내고 새 나무를 심는 비용이 천문학적입니다. 태안군처럼 산림의 69%가 소나무인 지역, 순천처럼 90%가 넘게 감염된 곳은 사실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립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있습니다. "수종전환은 방제가 아니라 수종 교체일 뿐"이라는 지적이에요. 재선충을 박멸한 게 아니라, 소나무를 없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선충은 여전히 어딘가에 있습니다. 다만 이제 퍼질 소나무가 없을 뿐이에요.

반면 자연치유 방식도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솎아베기입니다. 고사목을 제거해 햇빛과 통풍을 확보하고, 살아있는 소나무의 면역력이 스스로 올라오도록 유도하는 방식이에요. 숲 전체에 약을 칠 수는 없습니다. 숲이 스스로 이겨내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재선충 이후, 조경 현장의 소나무는 어떻게 되나

조경 현장에서 소나무는 오랫동안 단골 수종이었습니다. 사계절 푸른 상록침엽수에, 수형이 아름답고, 한국적인 정서와 딱 맞는 나무였으니까요. 그런데 재선충 이후 설계에서 소나무 반영이 점점 줄어들 것 같습니다. 심어놓아도 언제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소나무를 대체할 수종은 무엇일까요. 소나무를 쓰는 가장 큰 이유가 상록이기 때문에, 대체 수종도 상록이어야 합니다. 겨울에도 푸른 나무여야 조경 목적에 맞거든요.

남부지방에서 주목받을 만한 대체 수종으로 저는 가시나무를 꼽고 싶습니다. 가시나무는 상록활엽수입니다.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고, 남부지방 자생종이라 기후에 잘 맞아요. 재선충은 소나무과 나무에만 발생하기 때문에 가시나무는 재선충 피해를 받지 않습니다. 수형도 웅장하고 품위가 있어요. 도토리가 달려 생태적 가치도 높습니다.

물론 아직은 유통량이 적고, 소나무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것이 단점입니다. 하지만 재선충이 계속 확산되는 상황이라면 가시나무를 비롯한 상록활엽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재선충 이후, 우리가 숲을 대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 우리 삶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고, 비대면이 자연스러워지고,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코로나는 우리가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연결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재선충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나무 단순림의 위험성, 혼효림의 중요성, 건강한 숲이 스스로 이겨내는 힘. 이것들을 재선충이 가르쳐주고 있어요.

코로나도 재선충도, 완전한 박멸은 없었습니다. 사람도 숲도, 결국 스스로 이겨내는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었는지 모릅니다. 순천 그 산의 붉은 피바다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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